Life of the Beloved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독서를 하기 좋게 거실의 구조를 살짝 바꾼 이후에 혼자 흔들의자에 앉아 창문 밖을 바라보면서 무슨 책을 읽을지를 고민하다가 읽기 시작한 책. 그냥 제목이 좋아서 집어들었는데, 알고보니 헨리 나우엔의 책이었다. 지난달에 읽었던 탕자의 귀향헨리 나우엔의 글이었는데... 거참, 이게 무신 조화람...하면서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사실 제목도 제목이지만, 이책이 아주 마음에 쏙~ 들었던 점은 손쉽게 휴대하기 좋도록 디자인된 사이즈와 하루나 이틀정도면 쉽게 읽어낼 수 있겠다.는 편안함을 주는, 그 얇은 두께였다.



이 책은 헨리 나우엔과 한 비기독교인과의 우연한 만남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우연한 만남은 진정한 '우정'으로 발전되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그 친구로부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당신(헨리 나우엔)이 진정으로 해주고 싶은 말들을 써달라'는 요청으로 인해 헨리 나우엔은 이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한다. 헨리 나우엔은 그의 진심과 우정을 담아 그 친구에게 개인적으로 보내는 편지의 형식을 빌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가 꼭~ 전해주고 싶은 말들을 적어내려간다.

나는 헨리 나우엔이 가장 처음으로 전해 주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을까 매우 궁금했다. 헨리 나우엔은 "사랑받는 자" 라는 단어를 선택한다. 그는 신약성경의 마태복음 3장 17절에 나오는 말씀을 인용하면서 ... "...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 이 말씀이 바로 모든 인류를 향한 가장 깊은 진리, 곧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심정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가 그의 글 속에서 표현한것 과 같이 '너는 아무 것도 아닌 존재야, 넌 아무런 가치도 없는 사람이야. 라고 외치는 목소리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성철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고, 내가 기뻐하는 아들이란다."는 하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나는 이 부분에서 책 읽기를 멈추고, 몇 번이고 그 문단을 천천히 다시 읽어 내려갔다. 몇 번을 다시 읽었을까... 어느 순간인지 모르게 '이는 내 사랑하는 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말씀이 내 마음 깊은 곳으로 내려가 잠자고 있던 내 영혼의 귀에 대고 속삭이시는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깨닫게 되었다.

헨리 나우엔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존재.라는 진리를 깨닫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가 되어가는 모습을 선택받은 자, 축복받은 자, 상처받은 자, 나누어 주는 자.의 모습으로 설명해나간다. 그리고 실체적인 고통과 내 실제적인 존재 이유를 끊임없이 부정하는 유혹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사랑받는 자로 살아가는 것. 이라는 주제로 그의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사실 나는 늘 "고통의 문제"속에서 자유롭지 못해왔다. 내가 비록 마음이 울렁거리도록 짠한 '은혜'를 체험했었다 할 지라도, 내 삶의 구석구석에 언제나 존재하는, 나를 간단하게 산산조각 내버리는 고통의 파도에 나는 늘 압도 당해왔다. 때문에 내 맘속에는 뿌리깊은 패배의식이 있다. 바로 나를 압도하는 삶의 고통으로인한 패배의식. 하나님의 도우심이나 내 자신의 불굴의 의지로도 극복하지 못해온 내 삶속 한구석에 자리잡아 버린 고통에 대한 패배의식 말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책의 마지막 장에 서술된 고통의 문제에 대한 헨리 나우엔의 깊은 묵상이 다시금 내 마음의 눈을 번쩍 뜨이게 했다. 이부분은 그의 묵상을 나의 언어로 다시 설명하는 것 보다 책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는게 나을듯 하다.

"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또 사랑받기를 원하시는 분이라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불가사의한 진리라네. 우리를 창조하신 분은, 우리를 지으신 그 사랑에 우리가 반응하기를 기다리고 계시지. 하나님은 "너는 내가 사랑하는 자다"라고 말씀하실 뿐 아니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질문하시고 우리가 "네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도록 수 많은 기회를 만들어 주시지. 우리 내면의 진리에 "네,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하는 기회, 그것이 바로 영적인 삶이네...

...자네가 이러한 영적인 시각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 수 있게 되면,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 아주 중요하게 여기던 구분들이 그 의미를 상실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알 수 있을 걸세. 기쁨과 고통이 모두 하나님의 자녀 되었음에 대해 "네,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할 기회가 된다면, 고통과 기쁨이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슷한 것임을 알게 될 걸세. 상을 받는 경험과 우수하지 못함을 알게 되는 경험이 둘 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라는 우리의 진정한 정체성을 주장할 기회를 제공한다면, 이 경험들은 다른 것이 아니라 거의 같은 것이 되는 거지. 외로움과 편안함에 모두 우리를 자녀 삼으신 하나님을 더 잘 발견하게 하기 위한 부르심의 의미가 있다면, 이러한 감정은 별개의 감정으로 남아있지 않고 통합되네. 결국 사는 것과 죽는 것 둘 다가 온전한 영적 자아 실현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라면, 그것들은 세상이 가르치는 것처럼 정반대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동일한 신비의 양면이 되는 것이지. 영 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하나의 통합된 실재로서 살아간다는 말이네. 어둠의 세력은 나누고 분리하고 대적하게 만드는 반면, 빛의 세력은 하나를 이루게 한다네. '악마적인(diabolic)이란 단어의 문자적인 의미는 나눈다는 것이지. 악마는 분리시키고, 성령님은 하나가 되게 한다네..."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 처음 기대와는 다르게 점차 흥미와 동기를 잃어가는 책이 있는가 하면, 나도 모르게 책의 내용에 몰입되어 마치 글을 쓴 사람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리는 듯 한 느낌을 주는 책이 있다. 헨리 나우엔의 글들을 읽고 있으면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의 글들은 무엇보다도 솔직 담백하다. 그의 이야기들을 읽고 있노라면 그의 심장으로부터 솟아나오는 "진심"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진심이 전달될 때 사람의 마음은 움직인다.고 했던가. 헨리 나우엔의 글들은 나의 마음을 움직였다. 딱딱하게 굳어 미동조차 하지 않던 나의 영혼에 코끝이 시려오는 미세한 감동을 전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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